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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드시 들어봐야 할 노래 - 비와이&심바자와디, Neo Christian Flow
    김향기의 뮤직캠프/내 멋대로 고른 명곡 2020. 4. 14. 12:55

     안녕하세요 김향기의 뮤직캠프입니다. 현대사회는 전례 없이 많은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양식은 그 어느 때보다 가난한 것 같습니다. 삶의 만족과 유익을 잃어버린 채, 시간을 쫓아가기 바쁜 현대인과 특별히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노래. 오늘 제가 소개할 노래는 비와이&심바자와디의 <Neo Chirstian Flow> 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나타낸 앨범 자켓 (출처: 유튜브 뮤직 '데자뷰 그룹' 채널)

     

    곡 소개

     2020년 4월 12일에 발매된 비와이&심바자와디의 싱글 앨범이다. 앨범과 곡 이름이 동일하다. 앨범 제목인 <Neo Christian Flow>는 우리 말로 직역하면 '신 기독교인 플로우'. 즉, 새롭게 깨어난 그리스도인의 랩 혹은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랩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앨범 자켓처럼 이 노래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기존의 기독교를 믿는 이들에게 진리의 본질로 돌아오라는 말을 촉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곡 제목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앞으로의 '비와이와 심바자와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겠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들이 말하는 Neo Christian의 삶은 무엇일까? 가사를 본격적으로 파헤쳐보자.

     

    노래 듣기

     

    가사 파헤쳐보기 (심바자와디 part)

     

    신은 죽었다고 말했던 니체는 죽었다

     

      랩도 일반 노래 가사도 시와 같다. 운율과 음운 그리고 화자가 말하는 바, 주제를 알아야 한다. 그 주제를 알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비와이 파트에도 처음으로 등장하는 이 문구는 이 노래의 핵심적인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이렇게 물을 것이다. '니체는 누구인가?' 니체는 그리스도교의 종말을 고하며, 초인의 삶을 강조한 실존철학의 선구자다. 그는 기독교인의 이분법적인 신앙과 초월적 가치를 부정하며, 삶의 주체를 인간으로 지정한 인물이다. 

     

     심바자와디는 인간의 주됨의 끝이 '죽음'임을 고함과 동시에 니체라는 상징적 인물을 통해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사는 이들에게 경고를 한다. 뿐만 아니라 뒤의 가사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건, 신본주의적 가치관을 산다고 말하지만 위선적 행동을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전하는 이중적 메시지임을 알 수 있다.

     

    망칠 든 Christian Flow 그 예를 들면 나야

    전쟁 음악의 박자 비와이처럼 Meshasoulja
    너와는 용도가 다른 진짜 카모플라쥬 걸쳐

     

     망치는 성경 속에서 십자가를 못박은 도구로 떠올린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뜻한다. 심바자와디는 자신도 이런 크리스쳔이라는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도 비와이처럼 주님의 군대라고 표현한다. 이 대목은 심바자와디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Meshasoulja'는 'Messiah's soldier'를 발음하기 편하게 쓴 표기인 것 같다. Soulja는 soldier의 슬랭어다. 또한, 카모플라쥬 패턴도 군인을 떠올리는 소재이다.)

     

    선지 같은 피를 뒤집어쓴 선지자
    이 모습 예쁘장하기보다 구역질 나
    침묵이 길들인 눈엔 내가 적이야
    나약해진 형제여 삼켜라 청심환
    닮아있지만 구분해 침묵과 평화
    예수께선 입다물라고 하신 적이 없다
    세상과 싸워 이겼노라 한 그의 아들답게
    전갈과 뱀의 머릴 밟는 게 내 레드카펫
    Spit Killuminati 마치 2PAC Shit

     

     여기엔 심바자와디의 신학적 해석이 등장한다. '침묵'과 '평화'가 대조를 이룬다. 닮아있지만 다른 두 단어. 심바자와디는 이 가사를 통해서 문자적인 삶과 수동적인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을 비판한다. 그들을 가리켜 '침묵'이라고 말한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해보면 니체의 비판과 맥락이 비슷하다. 니체도 이런 수동적이고 이분법적인 (내세 즉, '천국'만 바라보고, 이 땅 '현실'을 돌아보지 않는) 삶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 점으로 미루어보아 심바자와디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는 점을 지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뒤이어 성경 속에서 비춰진 예수의 삶을 '세상과 싸웠다'는 성경적 표현을 통해 자신이 나아갈 길, 현대 그리스도인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전갈과 뱀의 머릴 밟을 권능을 가진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세상임을 알려준다.

     

     추가로 내가 인상깊게 본 가사는 '이 모습 예쁘장하기보다 구역질 나'는 선지자의 모습이 구역질 나는 것처럼 고난 받는 이를 극대화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예쁘장하게 치장하고 위선적인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구역질 난다는 중의적 표현 같았다.

     

    (전갈과 뱀의 머리를 밟는다는 표현은 누가복음 10장 19절을 인용한 것이다. 본문 10장은 예수가 칠십 인의 제자들을 모아 전도훈련을 시킨 사건 중에 예수께서 칠십 인들에게 전한 말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온전히 알지 못한 그들에게 전도를 하며 몇 가지를 충고한다. 복음을 전하되 세상의 것을 소유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것. 그들에겐 전갈과 뱀의 머리(어둠의 권세)를 제어할 권능을 이미 예수께서 주셨기 때문이다.)

     

    내 삶 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 싸움으로 세상과 내 삶을 구분하지
    허락된 승리에 악마들에겐 죽음만이
    Neo Christian Flow 마지막 때의 Theme Song

     

     내 삶을 주와 함께 못박혔다는 정체성(=내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다)의 확립과 앞서 말한 자신의 나아갈 길을 싸움으로 표현한다. 이는 Neo Christian 으로서의 다짐과 외침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린 그날을 기다려 눈뜬 채 깨어서
    진리를 통해 의심해 선하다 배웠던
    것들이 도적처럼 올 날에 짐이 되어서
    발목을 잡기 전에 시퍼런 날이 선채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울 준빌 하길 원해
    영으로 전해 죽여 위선

    좆 밥처럼 굴지 마 우린 Christian

     

    Neo Christian Flow
    Neo Christian Flow
    Neo Christian Flow
    Neo Christian

     

     그리스도인이 오직 소망할 것은 마지막 날 예수가 오시는 것 뿐임을 강조하며, 진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현대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위선(내세의 것을 따르는 것 같으나 일반인과 다를바 없는 물질만능주의적 신앙)을 말씀과 영으로 물리쳐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 모든 말을 다소 거친 언어로 이 가사들을 맺지만, 그만큼 간절하고 이제는 돌이켜라라는 그만의 전달과 호소라고 볼 수 있다.

     

     

    숨겨진 이스터에그 중 하나. 성자를 상징하는 십자가.

     

     

    가사 파헤쳐보기(비와이 파트)

     

    신은 죽었다고 말했던 니체는 죽었다

     

     심바자와디와 같은 말을 한다. 앞의 말과 다르게 비와이는 선포의 의미가 짙다. 뒤에 나오는 가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의 각성을 촉구할 뿐 아니라 세상을 향해 복음의 본질을 말하며 예수께로 돌아올 것을 자신의 삶에 비추어 선포한다.

     

    죽음따위 이겨내버린 구원자 예수였다
    무력하던 어젠 십자가에 걸었네
    부활 보혈이 꽤 묻었다 발걸음에

     

     복음의 내용과 성화된 자신의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는 니체들에게 예수의 다시 나심을 자랑하는 대목이다.

     

    죽음 앞에서 유행이 돼 니가 듣기 싫은 소문
    또 듣기 싫은 Flow 듣기 싫은 복음
    내가 이 땅의 소금이 돼 오늘이
    썩지 않게 내 손을 향해 박아 세상의 못을

    내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게
    예수를 위한

     

     비와이는 죽음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한계의 정점인 죽음을 계속 청자들에게 직시하도록 하며 복음은 죽음 가운데서 진정한 빛을 발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복음을 직역하면 복된 소식으로 여기서 듣기 싫은 소문과 듣기 싫은 복음은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성경에서 예수를 믿는 이들을 가리켜 '빛과 소금'이라고 말한다. 비와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소금으로 비유한다. 소금은 맛을 내는 조미료로서의 역할도 있지만, 방부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비와이는 아마도 후자의 역할을 차용한 것 같다. 자신이 죽고 예수를 통해 영생을 살아가는 삶을 비유한 것이다.

     

    내 삶은 수치를 당해도 영광은 비약해
    저 유혹이 위협해도 내일을 기억해
    주가 말한다 훗날의 축복은 이제 우리 앞에

     

     비와이는 앞서 말한 자신이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수치와 위협이 있더라도. 세상의 유혹 (물질적, 성적, 범죄의 유혹 등)이 다가올 때에는 심바자와디가 언급했던 내일의 소망을 기억하자고 다짐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오늘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축복의 은혜를 사하실 것을 믿고 나아가는 비와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는 몰라 True religion
    주일의 신 아닌 일주일의 진정한 주인이신
    유일의 신 그 아들을 따를 뿐
    우월해진 난 원래의 진리를
    동네가 숨기지 못하게 자랑해

     

     비와이는 말한다. 진정한 종교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이는 관용적으로 쓰이는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라는 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뒤에 나오는 내용은 '자신은 그저 진리를 따르는 것뿐'이라는 말을 뒷받침해준다. 비와이는 종교가 아닌 진리를 자랑하는 것 뿐이다.

     

    여길 초월하신
    이의 보좌를 빛나게 하는 게 내 역할
    빛으로 에워싸인 신의 형상
    쓰레기가 자녀가 돼 받은 건 기름 부음
    선행은 널 구원 못 해 오직 믿음뿐
    종교인이던 내가 거듭나 신앙인이 돼
    의심이 이젠 확신이 돼 천국을 미리 봬

    신을 벗고 들어가지 내 지성소
    구속안에서 자유한 Neo Christian Flow
    Neo Christian Flow
    Neo Christian Flow
    Neo Christian Flow
    Neo Christian Flow

     

     이 가사는 참으로 절묘하다. 복음의 본질적인 의미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시킨다. 이 가사들을 잘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초월적 존재이신 하나님께서 신의 형상을 닮은 우릴 창조하셨고,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회복의 역사를 완성시켰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함을 얻어 천국에 거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성도가 되었다. 그리고 이 구원을 통해 하나님과의 우리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어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구속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그리스도인. Neo Christian Flow다.

     

     

    영상 초반에 나오는 기독교인. 자신을 치장하기 바쁘다.

     

     

    곡 감상평

     비와이의 작업물을 들을 때면, 소름이 끼친다. 이번엔 심바자와디와의 합작이라 많은 기대감을 가졌지만 기대한 것 이상의 작업물을 내어줘서 감사했다. 비와이는 보통 가사에 맞는 비트를 쓰곤 한다. 이번에도 그런 요소들이 발견될 때마다 아주 멋졌던 것 같다. 기존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생활을 비판하면서 들리는 깨진 유리 조각 소리, 비와이 파트에서 마지막 부분에 플로우를 바꾼 것 등 아직 내가 이 곡을 완전히 알지 못하지만 숨은 요소들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m/v 에서도 이스터에그가 많이 발견됐다. 영상 중간에 멈출 때마다 보이는 성부, 성자, 성령의 심볼. 많이 신경썼다 라는게 저절로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이런 아티스트의 노래를 마음껏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축복이었다.

     

     진리를 전하는 일을 이렇게 멋지게 소화할 수 있구나를 느꼈고, 그리스도를 믿는 나에게도 선한 자극을 받게 됐다. 내가 앞으로 쓸 글들도 이 진리를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싶다. 이 곡을 쓰기까지 고민하고 묵상한 비와이와 심바자와디에게, 그리고 이 곡을 쓰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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